여행 당일 오후 1시 가까울 무렵 퀭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일본여행을 하자고 한 덕에 비행기표만 달랑 예매하고만 저는 숙소를 깜박 잊고 있었던 거지요. 덕분에 이 한겨울에 일본에서 노숙으로 꽁꽁 언 동태가 되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날이 밝아올 때까지 숙소를 탐색했다지요.
쉽지 않았습니다. (TωT)
아니 정확히는 너무나도 비싼 숙박비에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라고나 할까요? 호텔 1박 숙박비가 한 사람에 최소 7~10만원 정도? 혼자서 자면서 이것은 사치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한인민박!!!
1인실부터 4인실까지 고루 갖추고 있으며, 여행자들이 오가며 정보를 공유하기에도 좋은데다 무엇보다 가격이 쌉니다.
단돈 3만원!!! 이에~~ 乂(*▽)ノ♡
좋은 것을 찾았다. 라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자고 일어나서 방을 예약하려고 했더니…… 방이 없답니다. -_-;;;
그렇지요. 그렇겠지요.
금요일 저녁.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출발할 때. 방이 있을 리가 없지요.
다급해졌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노숙 확정!! 절체절명의 시점!!!
이제 친절한 민박이라거나, 아침밥이 잘나온다거나 이런 조건 따위 필요 없어진 겁니다. 제발 잠만 잘 수 있게 해줘 (TωT)
전화에 전화를 거듭한 결과 비어있는 방이 있는 민박을 발견! 바로 덜컥 입금하고 예약했습니다. 주인이 불친절하면 어쩌나, 환경이 안좋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이 많았습니다만……
다녀온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거지만, 민박을 그것도 다짜고짜 연락한 가운에 이 곳에 연락해서 묵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행운 이라고 할까나? 아무튼 그랬던 것입니다.
휴우……, 숙소를 예약하고 나니까 오후 2시가 다 되갑니다.
자 이제 문제 없어요. 비행기 시간은 19시 45분. 현재 14시. 서점에 들러서 가이드북을 사서 천천히 읽어보다가 17시까지 공항에 가서 여유롭게 출국수속을 한 뒤에 초 특급 제트엔진을 탑재한 항공기를 타고 단숨에 우주로…… 바이바이 한국이여…… 라는 겁니다.
라고 생각한 찰나 네X버 기사에 오늘의 환율 폭등 어쩌구 하는 기사가 눈 앞에 다단계로 클로즈업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느낌이냐 하면……
환율 폭등
환율 폭등
환율 폭등
환율 폭등
요런 느낌이랄까요?
아……, 그러고 보니 나…… 환전도 안 했었지……
……
전날의 환율 1400원대, 오늘은 1500원대.
눈물을 흘리며 환전을 마치고, 드디어 엔화를 손에 쥐었습니다.
어느덧 시계바늘이 3시 가까이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꾸물거릴 여유는 없는 듯 하여 마지막으로 뭔가 빠진게 없나 확인해보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자면 뭔가 빠진게 있어도 전혀 눈치 못 챌지도……
문단속을 하고, 집을 나섭니다.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 혼자서 적막한 동네를 캐리어를 끌고 드르륵 드르륵……
4시 30분 드디어 공항에 도착했는데 어디서 이상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군요. 이 노래는 맘마미아로 유명한 ABBA의 ‘GIMME GIMME’가 아닌가! 호기심에 음악소리에 이끌려 2층 홀로 가보니 글쎄……
스튜디어스 누님들이 ‘Tell Me’ 춤을……(거짓말) 추는 게 아니라 연례행사를 하고 있네요.
어찌 보면 굉장한 우연, 단 하루 4시에서 5시까지 공항 승무원 밴드 그룹이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날이었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의 구수한 용트림 소리에 빠져들 듯 이 작은 라이브 콘서트는 흥겨웠지요.
5시까지가 아니라 8시까지 했다면, 열심히 듣다가 비행기 찾아 삼만리를 할 뻔 했지요.
헛!!
갑자기 혼자 듣기는 아깝다고 생각해서 웹에 공유를 하려고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었는데…… 영~ 음질이 좋지 않군요.
뭐, 그래도 들을 만은 하니 같이 흥겨움에 빠져봅시다.
이렇게 보여도.
앵콜도 합니다.
콘서트를 집중해서 들었더니 배가 고픕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을 먹으러 갑니다. 사실…… 기내식이 나올 줄 알았다면, 비싼 공항식당의 밥 따위 먹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_- 설마 두 시간 비행에 기내식이 나올 줄은……;;;
혼자 푸드 코너에 가서 고추장불고기 덮밥을 시켜서 먹습니다.
바로 대각선 옆 테이블에 저처럼 혼자 식사를 하는 일본인인듯한 느낌의 아저씨가 보이는군요.
잠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봐, 나는 다나카라고 하네 혼자 여행하는 것도 나름의 로망이지 않나? *∀)ノ’
‘그렇지요. 그렇고 말고요~ 이런 쓸쓸함 따위~~ 전 이겨낼 겁니다. (*・ω・)b ‘
‘훗, 자네 마음에 들었어, 일본에 도착하면 내가 잘 아는 미이도씨의 가게에 꼭 가보라고 내가 잘 말해 두겠네. *∀)ノ’
‘오옷, 이런 친절을, 다나카씨 당신은 혹시 천사의 환생인가요!’ (@゚▽゚@)ノあはは
……
아아, 안돼. 정신이 이상해진다. 망상은 그만두고 밥이나 열심히 먹기로 했다.
밥을 다 먹고났더니 6시, 아직 비행기 탑승시간까진 한 시간 반 정도의 여유가 있군요. 면세점 구경이나 할까나…… 비록 사지는 않을 거지만.
이렇게 생각한 저는 잽싸게 수속을 마치고 내부로 진입. 면세점을 마주하는 순간 경직하고 말았습니다.
인천공항에서의 웅장한 면세점을 기대하면서, 한 시간 정도를 면세점에서 때우려고 했는데 꼴랑 면세점 코너가 두곳?
뭐지 이건…… 이게 무슨 햄버거에서 닭머리 튀어나오는 경우지?
하지만 사전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제 우둔한 머리를 탓해야겠지요. 흑흑. (*´·д·)
결국 한 시간가량을 벤치에서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면서 비행기의 꼬랑지만 쳐다보며 시간을 때웠습니다.
19시 45분 김포-하네다 JAL 비행기 이용 고객님들은 지금부터 탑승을 시작합니다.
안내방송이 나온 후 저 길다랗게 보이는 통로를 지나서, 창가 쪽 좌석에 앉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이 야밤에 구름이 보일리도 없는데, 뭐하러 창가쪽에 앉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통로 쪽에 앉으면 화장실 갈 때도 편하고, 이것 저것 밥 먹고, 음료수 주문할 때도 편할 텐데 말이지요. 역시, 경험부족이라고 밖에는……
아직 옆자리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앞 뒤쪽 자리가 하나하나 채워는 모습을 보니 친구와의 훈훈한 대화가 떠오르는군요.
나: 이거 혼자서 여행을 떠나려니 재미있게 지내다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군 친구여.
친구: 바보 같은 녀석. 너는 진정 모르겠는가? 홀로 떠나는 여행, 비행기 좌석은 3개, 분명 너처럼 혼자 떠나는 여자가 있겠지.
나: 서… 설마. 너…… 너는. 그, 그걸 말하는 건가?
친구: 후후훗. 그렇다네 친구여. 바로 젊은 청춘을 불사르는 로맨스가 자넬 기다리고 있다네.
로. 맨. 스.
자네의 옆자리에 행운이 깃들길 기도하겠네.
나: 오오, 그렇군 친구여. 이런 하찮은 일에 걱정하는 내가 바보 같았어. 나 힘내서 다녀오겠어!!
아, 다시금 샘솟는 의욕. 점점 빈 자리에도 사람들이 채워집니다. 비행기 내에는 긴장감이 잔뜩 흐르고 있습니다.
.
.
.
그 때 일본어로 들리는 목소리.
“실례합니다. (しつれいします。)”
그 때……
그 짧은 순간에 저는 알아버렸습니다.
.
.
.
남자구나…… 라는 것을.
로맨스는 무슨…… 개뿔……
잠시 후
친구녀석의 비웃음 소리가 머릿속 가득히 울려 퍼지는 느낌과 함께 비행기가 서서히 공중으로 솟구쳐 오릅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여행기가 2화가 될 동안 아직 일본에 발도 못 붙였네요.
그럼, 다음 편에 본격적으로 ...... ^^
무계획 무대책 도쿄여행기1화 - 어느사이엔가 내 손에 비행기 타켓이 있었다.-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