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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야기/올뺌씨의 사는 이야기

[365일 글쓰기 연습] 우린 비밀로 하기로 했다

by 방구석 올뺌씨 201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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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ba Fernández의 Scert에서 발췌...]


세상에 비밀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긴 하나 싶다. 한창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 5~6살 무렵에 있었던 일이었다. 내가 호기심 반 배고픔 반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우유 하나를 슬쩍 한 일이 있었다. 어린아이의 조그만 손으로 냉장고에서 제일 작은 우유를 들고 가게 문을 넘어 사라지는 시간 동안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사라진 우유의 행방에 대해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요즘까지도 잠입액션 장르의 게임에 푹 빠져드는 이유도 이때의 스릴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우유를 손에 들고 누가 볼까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에 있는 한 살 터울 동생에게 손에 들고 있는 우유를 보여주며 슈퍼에서 일어난 일을 자랑스레 무용담마냥 늘어놓았다. 동생은 엄마에게 절대 말하지 않겠다며 나를 영웅 우러러보듯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가증스럽게도 나의 비밀은 동생에 의해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밤에 아버지가 들고온 연탄집게가 사정없이 내 종아리를 내려쳤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에 족쇄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이런 뼈아픈 깨달음을 얻기 위해 희생한 종아리가 다 아물기도 전에 희한한 장면을 보게 됐는데 건너 집 순이 아줌마와 아빠가 골목 뒤에서 꼬옥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유를 훔쳤을 때와 같이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누워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동생에게 누가 들을 새라 조용하게 눈으로 본 사실을 말해주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고 비밀로 하기로 했다. 잠이 들기 전 어렴풋하게 이전에는 나에게 향했던 연탄집게가 내일은 아빠를 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종아리의 통증이 점점 옅어지는 것 같았다. 아마 내일은 운동장에서 신나게 축구를 하며 놀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으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글쓴이: 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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